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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

허건오의 어느 멋진 날

 

아침부터 어디 가십니까 허건오씨.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던가요? 태성은 야행성인 제 룸메이트가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대는 것에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뭐야 그 눈은? 나는 일찍 일어날 줄 모르는 줄 알아? 아침형인간은 참 좋겠어? 건오는 입을 삐죽였다. 아침형인게 아니라 원래 잠을 적게 자는 겁니다. 어젯밤도 제가 더 늦게 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태성은 간단히 대꾸하고는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가 모범생 아니랄까봐, 그러다 쓰러진다? 그나저나 오늘 공강 아니야, 하태성나리? 공강 맞습니다. 그런데 왜 공부를 하고 있어? 건오는 질린다는 듯 표정을 찡그렸다. 공부는 매일 해야죠 허건오씨. 그런데 바쁘신 것 아니였습니까? 아 맞다. 건오는 발을 신발에 구겨 넣었다. 나 간다, 피곤하면 더 자는 게 좋은 걸? 건오는 급하게 문을 열었다. 다녀오십시오- 문이 쾅 닫혔다. 태성은 픽 웃으며 다시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태성은 옆에 뒀던 휴대 전화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김주황씨. 아, 네. 방금 허건오씨 나갔습니다.

 

급히 자취방에서 나온 건오는 신발을 고쳐 신고 택시를 기다렸다. 아, 이 택시는 대체 왜 안오는 거야. 멀리서 보이는 빨간 불빛에 건오는 손을 뻗어 택시를 잡았다. 버스 터미널로 가주세요. 휴대 전화로 시간을 보니 버스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었다. 이번 버스를 놓치면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아저씨 조금만 더 빨리 가주세요. 택시 기사는 총각, 어디 급히 가야 하는 곳이 있나봐? 하고 액셀을 밟았다.

 

아 요즘 택시 진짜 비싸네. 택시에서 내린 건오는 터미널 창구로 향했다. 성인 한 명이요. 네, 5번 플렛폼입니다. 5분 후에 출발하니 서둘러주세요. 건오는 5번 플렛폼을 향해 달렸다. 이 놈의 플렛폼은 뭐 이리 멀어. 조용히 욕설을 내뱉은 건오는 시야에 들어온 출발하기 직전의 5번 플렛폼 버스에 올라탔다. 기사에게 표를 건네고 뒤에서 세 번째 줄 창가 칸에 앉은 건오는 이어폰을 꽂았다. 택시에서 내려서 버스에 타는 시간동안 확인하지 못한 문자가 한 통 와있었다. 허건오씨, 오늘 집에 들어옵니까? 굳이 발신인을 보지 않아도 누가 보낸지 알 수 있는 문자에 아마도? 들어갈 걸? 이라고 답문을 보냈다. 알겠습니다. 너무 늦게는 오지 마십시오. 어. 하태성 나리는 잠 좀 자고. 간략한 문자를 끝낸 건오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화창한 하늘에는 구름이 천천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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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 총각 종점이야. 일어나. 버스 기사의 목소리에 비몽사몽한 정신을 차린 건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워낙 야행성 생활을 했던지라 아침 일찍 일어난 것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잠이 든 모양이였다. 버스에서 내린 건오는 찌뿌둥한 몸을 폈다. 터미널 옆의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산 건오는 꽃집을 발견했다. 꽃이 방금 들어온 것인지 향기를 풍겨대는 꽃집은 건오의 발걸음을 돌리게 했다. 백합을 좋아했었지.

 

꽃집에 들어선 건오에게 아가씨 하나가 다가왔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건오는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여자에게 백합 꽃다발이 있는지 물었다. 여자는 고백하러 가시나 봐요?아니면 이벤트? 어쨌든 백합이 방금 들어와서 굉장히 신선하고 예뻐요. 받으시는 분도 분명 좋아 하실거에요. 하며 조잘거렸다. 아 네. 하고 짧게 대답한 건오는 빠르게 포장된 백합 다발을 들고 돈을 건낸 뒤 뭐가 그리 좋은지 밝게 웃으며 다음에 또 오세요. 하는 여자에게 고개만 대충 끄덕이곤 꽃집에서 빠져나왔다.

 

건오는 주택가에 들어섰다. 이 근처일 텐데. 아, 찾았다. 하나의 주택 앞에 선 건오는 초인종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누르지 못하고 다시 손을 거두어 들인 건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손에 든 백합향기가 건오의 코를 간질였다. 건오는 문 옆의 담장에 기대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깊게 들이마셨다가 딱 들이마신 만큼 깊게 내쉬며 씁쓸한 감각이 몸을 휘돌아 감았다. 먼 길을 왔음에도 결국 자신은 초인종조차 누르지 못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맑은 가을 하늘은 그런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건오는 담장을 타고 미끌리듯 쪼그려 앉았다. 연을 끊은 지가 언제인데. 자꾸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돌아 와 이러고 있는 꼴이라니. 제 생각에도 우습기 짝이 없는 짓이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을까. 건오 앞의 바닥에는 벌써 예닐곱 개의 개비들이 흩어져 있었다. 시간도 확인 할 겸 휴대 전화를 확인하니 언제 온 것인지 모를 태성의 문자가 와 있었다. 어딥니까? 짧디 짧은 다섯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대충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니 기다렸다는 듯이 멀리도 가셨군요. 저녁은 먹고 올겁니까? 하는 문자가 왔다. 아니, 지금 다시 버스 타러 갈 거야. 건오는 그렇게 답장을 보내곤 옷을 툭툭 털며 일어났다. 발로 담배꽁초들을 대충 담장 구석으로 밀어내고 계속 들고 있던 백합 꽃 다발을 문 앞에 내려두었다. 건오는 발걸음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터미널에 도착한 건오는 돌아가는 버스 표를 사기 위해 창구로 행했다. 점심을 편의점에서 대충 때웠던 터라 허기가 지긴 했지만, 별로 뭔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가는 길에 맥주나 몇 캔 사갈까. 제 까다로운 룸메이트가 싫어할 것은 뻔한 일이였다. 30여 분 남은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흡연실에 들어간 건오는 다시 한 개비 꺼내어 물었다. 아 담배 냄새 풍기며 들어가면 보나마나 허건오씨. 제가 담배 피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하며 잔소리 할 텐데. 건오는 담배냄새를 대충 툭툭 털고 플랫폼에 들어왔을 버스를 타기 위해 플렛폼으로 향했다. 버스에 타고 또 다시 이어폰을 꽂은 후 밀린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니 버스 타셨습니까. 하는 룸메이트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응. 방금.

-알겠습니다.

-왠 일로 이렇게 문자를 많이 보낸대?

-저는 문자하면 안됩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안전밸트 꼭 매고 휴대전화도 넣어 두십시오. 멀미 잘 하시지 않습니까.

-내 걱정 해 주는 거야 하태성 나리? 이거 감동인데.

 

더 이상 답장이 오지 않는 휴대 전화를 주머니에 대충 쑤셔놓고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해가 짧아지긴 했는지 벌써 서쪽 언저리에 있는 태양에 건오는 커튼을 치고 창에 기대었다. 피곤해. 머리로 느껴지는 버스의 진동에 멀미가 날 것 같았지만 억지로 눈을 감았다.

 

 

£

 

 

버스의 흔들림이 멈췄다. 천천히 눈을 뜬 건오는 뭉친 어깨를 대충 풀어주곤 내리고 있는 승객들 사이에 줄을 섰다. 아, 잘 못 잤나. 찌뿌둥한 몸에 불편함을 느끼며 끄응. 소리를 낸 건오는 습관적으로 문자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와 있는 태성의 문자 메시지에 뭐 감시카메라라도 달아놨나? 하며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쯤이면 도착하셨겠군요. 오시는 길에 맥주 좀 사오시죠.

 

뭐야 해가 서쪽에서 떴던가.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된 것이라던데. 술과는 거리가 먼 태성의 문자에 멍하니 중얼거린 건오는 자신도 술이 고팠던 터이니 잘 됐다고 생각하며 답장을 보냈다.

 

-뭐야 하태성 나리 해가 서쪽에서 떴어? 왠 일로 술을 찾으신대?

-뭐, 저라고 술을 아예 안 마시는 것은 아니여서요. 그래서 안 사오시겠다는 겁니까.

-사갈게. 치킨이나 시켜 달라고.

 

건오는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집 앞에서 사는 게 낫겠지. 건오는 손을 뻗어 택시 한 대를 멈춰 세웠다. 아까까지의 우울감 따위를 뒤로한 발걸음은 유난히도 가벼웠다.

 

 

-하태성 나리, 어떤 거 사갈까?

-아무거나 드시고 싶은 거 사오십시오. 김주황 씨도 와있습니다.

흐음, 고릴라도 와 있을 줄이야. 많이 사가야겠네. 고릴라한테 술값 받아야지. 건오는 문자를 받고 중얼거리고는 주류코너로 향했다. 먹고 싶은 거 사오라 했었지. 건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카운터에 맥주를 내려놓았다. 19세 미만 판매불가 상품입니다. 신분증을 제시 해 주세요. 라는 알바생의 말에 기쁘게 신분증을 내 보였다. 아르바이트생은 그런 그를 신경도 쓰지 않고 카운터에 올려진 맥주를 계산했다.

 

열 두 캔의 맥주들이 봉지 속에서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한 손에는 봉지를 들고 늘어지게 하품을 한 건오는 집 앞에 섰다. 삑삑삑삑 소리를 내며 비밀번호를 누른 건오가 문을 열었다. 뭐야, 불은 다 꺼놓고 뭐하는 거래. 하태성 나리- 고릴라- 뭐해? 킁, 이건 왠 맛있는 냄새래? 집에 완전히 발을 들여놓아 현관문이 닫혔다. 그와 동시에 방문이 벌컥 열리며 두 사람이 걸어나왔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짜증나는 애송이~ 생일 축하 합니다~ 장난스러운 주황의 생일 축가가 끝나고 건오도 얼떨결에 케잌위의 촛불을 불어 꼈다. 생일 축하 합니다 허건오씨. 그와 동시에 거실의 전등이 켜졌다. 눈 부신 빛에 살짝 표정을 찡그린 건오는 표정을 피며 어떻게 생일을 알았냐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다 아는 수가 있습니다. 하며 안경을 고쳐 쓴 태성이 말을 이으려 하자 주황이 그런데 밥은 안 먹냐? 애송이 기다린다고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고. 하며 태성의 말을 끊었다. 태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식탁에 앉으시죠. 하며 식탁에 앉았다. 와아, 이게 다 뭐래? 실력 발휘 좀 해봤습니다. 치킨은 없지만. 건오는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태성을 껴 안았다. 떨어지십시오. 단호하게 밀어낸 손길에 건오는 쉽게 떨어지며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를 꺼냈다. 뭘 그리 많이 사오셨습니까. 끄응. 소리를 낸 태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세 사람은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

건오가 앞에 있던 집의 대문이 열렸다. 얌전히 놓여 있는 백합 다발이 문을 열고 나온 남자의 시선에 닿았다. 왔다 갔나. 좀 들어왔다 가지는. 남자는 한 번 한숨을 내쉬고는 백합 다발을 쥐어들었다. 어머니 좋아하는 꽃은 또 기억하고 있어선. 남자는 서툰 제 동생을 생각하며 몸을 돌렸다. 생일 축하해. 라는 전화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삼키며 남자는 집에 들어섰다. 어머니, 어머니께 선물 온 것 같은데요.

 

 

 

 

후기) 일단 건오야 사랑해! 생일 축하하구요! 합작주최해주신 릴님 감사합니다!! 사실 저 생일 글로 4천자 넘긴 거 처음이라 너무 설레네요. 신호등은 대학생이라는 설정으로 썼답니다! 으헣헣 좀 의식의 흐름인 부분이 많아서 걱정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건오야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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